방콕의 아침 탁발 풍경
11월 19일 / 여행 23일째
인생을 살아가며 아침에 우리를 벌떡 깨울 수 있는 일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아침에 잠자리에서 쉽게 벌떡 일어나십니까?
왜 있잖아요.
우리가 어렸을 때 소풍 가던 날 새벽에 누가 깨우지 않아도 알아서 일어났잖아요.
그렇지 못하다면 살아가는 일이 피곤한 것이라고 합니다.
여행 중에도 우리의 아침을 깨워 벌떡 일어날 수 있어야 그 여행이 즐거운 것입니다.
그런데 있잖아요.
나이가 들면 평소에도 왜 아침잠이 없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침에 어두컴컴한 길을 나서 과일이나 아침 먹을 것도 사고 새벽의 모습을
보기 위해 여행자 거리로 나갑니다.
11월 방콕의 밤은 제법 서늘합니다.
창문을 열고 밖을 바라보니 서서히 날이 밝아옵니다.
새벽 동이 틀 무렵의 하늘의 오묘한 색깔은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길거리에 아침 탁발을 나오신 스님이 앞에서 걸어가기에 따라나섭니다.
탁발이란 승려가 마을을 돌아다니며 음식을 걸식하는 일을 일컫는다지요?
그러나 탁발은 시주하는 사람이 공덕을 쌓게 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지요.
공덕을 쌓게 되면 다음 세상에 좋은 곳으로 간다고 하지요.
착의지발(着衣持鉢)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니 사원 밖으로 나갈 때는 반드시 큰 가사를 두르고 탁발을 위하여는
발우를 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가사란 원래 죽은 사람의 옷이나 다른 사람이 버린 옷을 주워 108 번뇌를 의미한
108조각으로 꿰매 입는다는 데 요즈음에는 그런 옷을 입은 수도자는 정말 없는 듯합니다.
그리고 과거에 발우는 아마도 나무로 만들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지금 동남아시아에서는 스테인리스 그릇 등 다양한 발우를 사용하더군요.
그럼 발우가 준비되지 않으면 굶어야 합니까?
아니지요? 비닐봉지를 들고 갑니다.
이때는 비닐봉지가 발우로 변신을 하지요.
비닐봉지를 발우라고 하면 발우입니다.
세상 일이란 우리가 생각하고 이름을 그리 붙이면 그렇게 됩니다.
그런데 요즈음 이렇게 개인 비서를 두고 카트 발우(?)를 들고 뒤를 따르게 합니다.
아! 이 수행자는 뒤를 따르는 게 아니고 앞에서 걸어가는군요?
행자님~ 이러시면 정말 곤란합니다.
무척 힘이 들어하시는 노스님....
뒤로는 탁발한 음식을 들고 따르는 수행자가 있습니다.
스님도 나이가 들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수행자란 모름지기 이렇게 뒤를 따라야 합니다.
행여 그림자라도 밟을까 노심초사하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탁발을 시작하는 곳에서 차례로 일곱 집을 거치는 동안
탁발을 끝내야 한다고 부처님이 가르쳤습니다.
더 오래 다니며 민폐 끼치지 말라는 말이고 한 끼 먹을 양식이면
더는 욕심내지 말라는 의미겠지요.
탁발하러 다닐 때는 반드시 맨발이어야 하며 공양 후에 발을 씻는 세족을 합니다.
한국에서 탁발이 없어진 이유도 맨발로 해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부처님~ 한국에서 겨울에 맨발은 너무 고행이잖아요.
탁발의 풍습은 대단히 오래된 것으로서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부터
존재하던 것이라고 합니다.
즉 인도의 출가 수행자들은 일체의 생산활동에 종사하지 않는 대신 탁발을 통해서
식생활을 해결했는데, 불교 교단에서도 그 방식을 그대로 수용하여
스님들의 생활 방편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힌두교에서는 비쉬누 신의 9번째 화신이 부처라고 합니다.
그러니 원조논쟁은 무의미하다는 말이죠.
그러나 이것은 걸인들의 구걸 행위와는 엄연히 다른 것으로, 오직 수행을 위해
목숨을 보전하는 수단이었던 만큼 거기에는 엄격한 규칙들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하루에 한 번 오전 중의 정해진 시간에만 한다거나 민폐를 줄이기 위해
하루에 일곱 집씩을 방문하여 조금씩 얻어서 모은다거나 가난한 집과 부유한
집을 차별하지 않고 차례대로 방문한다거나 탁발을 유도하는 어떠한
언행이나 태도도 내비치지 않는다거나 하는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일부 종교인은 공양을 유도하는 말을 하곤 하지요.
그것도 크게 시주를 하면 크게 돌려준다고요.
받는 사람은 누구이고 돌려주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비닐봉지가 참 좋습니다.
부처님의 탁발 행위까지 바꾸었지요.
또 가르침이나 그 밖의 것을 베푼 대가로 공양을 받아서도 안 되고
먹다 남은 것을 보관해 두는 것도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다른 의미에서 탁발은 그 자체가 수행자 자신의 교만한 마음을 잠재우는
수행의 하나였을 뿐 아니라 시주하는 사람에게는 출가자에게 음식을 공양하는 것이
상당한 공덕이었으므로 신자들의 복덕을 빌어주는 일은 스님의 의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사찰이 어느 정도 정착되어 사찰 안에서 직접 음식을 만들게 된 이후에도
탁발은 일부 수행으로 일부 스님들 간에 꾸준히 행해져 왔고, 그것이
우리나라에도 전해져 오늘날에까지 이어져 오는 것입니다.
다만, 현재 우리나라 조계종에서는 종헌 종법으로 탁발을 금지하고 있는데
그것은 현대 사회 속에서 성직자의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겨울에 맨발 탁발은 우리나라에는 맞지 않는 일이지요.
공양에는 음식만 하는 게 아닙니다.
부처님에게 바칠 꽃도 공양합니다.
이렇게 위생적으로 포장하여 준비하여 팔기도 합니다.
미처 집에서 준비하지 못한 사람을 위해 1인용씩 포장하여 놓았습니다.
탁발도 나중에는 탁발용 전용 자판기가 있어 그곳에 카드를 긁고
뽑아가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요?
스님~ 그리하시면 아니 되옵니다.
지금 차도를 무단으로 횡단하시려고 좌우를 살피시며 그리로 건너가십니까?
건너편에는 POLICE라고 쓴 차도 서 있습니다.
경찰이 두렵지도 않습니까?
무단 횡단은 위험한 일이고 중생들이나 아이들에게 전혀 교육적이지 못하옵니다.
아무리 탁발하시는 시간이라도 이 길은 큰길이라 차가 많이 다닙니다.
헉! 그러나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처럼 이미 건너가셨네~~
어리석은 佳人아~
네 눈에는 내가 무단 횡단하는 것으로 보이느냐?
내 한 몸 중생에게 하지 말아야 할 모범을 보일 수만 있다면
나는 무단횡단도 마다하지 않으리라.
모든 사람이 안전하게 건너 다니는 건널목은 고행의 길이 아니니라.
이런 것도 수행의 일환이고 중생에게 위험을 알리기 위해
내 육신을 던지는 살신성인의 일이다.
또한 경찰이 두려웠다면 나는 애초에 수도자의 길을 걷지 않았으리라.
佳人아~ 그래서 언제 깨달음을 얻어 해탈하겠느냐~
더 공부하고 정진하여 성불하거라~~
스님! 저도 스님 따라 건너가오리까?
스님~ 전깃줄에 앉았던 비둘기도 간담이 서늘해 요동을 칩니다.
우리가 태국에 가서 겪는 제일 어려운 일 중 하나가 길을 건너는 일이다.
우리와는 차량 통행이 달라 좌우를 살피는 일이 자꾸 반대로 바라본다.
습관이라는 것....
정말 무서운 것이다.
학교에 등교하는 이슬람 학생들...
다양성이 태국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방콕의 아침은 탁발로 시작되고 우리 부부는 1일 투어로 시작한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내가 만일 내 인생을 사랑한다면,
인생 또한 내게 사랑을 되돌려 줄 것입니다.
마음을 편안하게 먹고 내 인생을 사랑한다면 지루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