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강산 대한민국/전라남도, 제주도

승보종찰(僧寶宗刹) 송광사(松廣寺)

佳人 2022. 6. 22. 04:00

 

송광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위의 사진에 보이는 삼청교가 아닐까요?
아래를 아치 형태로 만든 삼청교(三淸橋)는 능허교(凌虛橋)라고도 불린다네요.

능허교의 의미는 허허로운 하늘로 오른다는 의미라지요?

 

 

아마도 하늘의 의미는 부처의 나라인 불국이 아닐까요?

종교가 없는 우리 같은 사람에게는 송광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바로 여기라고 생각합니다.

 

 

삼청교는 대웅전으로 들어가기 위해 내를 건너는 다리 구실도 하고요.

또  다리 위에 우화각(羽化閣)이라는 건물을 세워 건물 구실도 하는 특이한 다리라고 할 수

있겠고 우화각은 소동파의 적벽가에 나오는 우화등선(羽化登仙)에서 유래하였고,

몸과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져 하늘나라로 올라 신선이 된다는 의미라고 하니

이 또한 부처의 나라인 불국으로 이르는 말이 아닌가요?

그러니 이 다리는 인간의 세상에서 부처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그런 의미가 아닐까요?

 

 

다리 밑으로 흐르는 계곡을 이용하여 19개의 4각 장대석을 각지게 맞춰 홍예(虹蜺) 모양을

이루고 양쪽 측면으로는 막돌이 아닌 4각 판석을 쌓아 올렸고 또, 난간 받침돌과 돌출된 중심 돌

위에 4개의 긴 돌을 연결하여 난간을 이루었고, 홍예 천장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머리 돌이 나와 있습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먼저 일주문을 통과해 송광사로 들어갑니다.

일주문은 원래 만수교 앞에 있던 것을 1814년(순조 14)에 조계교(曹溪橋)가 있었던 곳으로

옮겼다가 1944년에 극인(克仁)이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으며,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송광사로 들어가는 길에는 왼쪽으로 비포장도로가 있습니다.

이 길은 무소유 길이라고 부른다네요.

이런 이름이 붙은 이유는 법정스님이 자주 걸으셨던 길이었기에 그랬다네요.

 

 

대나무 숲, 삼나무, 편백나무, 상수리나무 등 다양한 종류의 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길을 걷다 보면 법정스님의 가르침인 무소유를 어느 정도는 알 듯합니다.

그러나 다시 돌아 나오면 우리 같은 사람은 다시 세상을 움켜쥐려고 아귀처럼 살게 되겠지요?

 

 

이 길의 끝은 불일암이라고 하는데 불일암에는 무소유를 실천하셨던 법정스님의

유언에 따라 스님께서 생전에 가장 아끼셨던 후박나무 아래 잠드셨다고 합니다.

거리가 1.2km로 왕복한다면 한 시간 조금 더 걸릴 것이니 시간이 허락한다면

불일암까지 걸어보는 것도 좋지 싶습니다.

 

 

송광사로 들어가는 입구에 하마비가 있네요.

누구라도 이곳에서는 말에서 내려 걸어 들어가야 한다는 의미겠지요?

 

 

송광사는 사적 제506호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21교구의 본사로서 한국 선종의 대수도

도량으로서 유서 깊은 승보사찰(僧寶寺刹)이며 통도사, 해인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사찰로 꼽히는 절이라지요.

송광(松廣)이라는 이름은 조계산의 옛 이름인 송광산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네요.

 

 

송광사는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조계산에 있는 큰 절로 신라 말기인 867년에

혜린 선사 체징(體澄)이 작은 암자를 짓고 길상사(吉祥寺)라고 한 것에서 비롯되었고

고려 명종 때 보조 국사 지눌이 크게 고쳐지었다네요.

고려 희종 때 송광산 길상사를 조계산 수선사(修禪寺)로 개명하게도 했고요.

 

 

그 뒤 폐허화되었던 것을 고려 중기의 고승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이곳을 지나다가

영천(靈泉)의 물을 마신 뒤, 영천으로 인하여 뒷날에 큰 절을 세울 수 있는 곳이라

판단하여 샘 주위에 돌을 쌓아두었다가 제자를 시켜 뒷날 그 자리에 절을

중창하도록 당부하였다고 전해오네요.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거치며 그야말로 빈 터만 남는 폐허로 변했다가 다시 지었으나

1842년 큰 불이 나서 대웅전과 함께 많은 건물이 타기도 했고 여순 반란사건과 6,25를 거치며

다시 폐허로 변했다가 그때마다 다시 지어가며 역사만큼이나 송광사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 지금에 이르렀네요.

 

 

그 뒤 이 절에서 16명이나 되는 국사가 나와 승보 사찰로 유명해졌으며 불교도가 존경하고

섬기는 불, 법, 승을 삼보라 하는데 불(佛)의 통도사, 법(法)의 해인사, 승(僧)의 송광사를

삼보 사찰이라고 한다고 하며 현재 16 국사의 영정이 국사전에 모셔져 있다고 합니다.

 

 

계곡물이 흐르는 곳에 다리를 담근듯한 골 기둥을 세우고 그 위로 나무기둥으로

받침을 한 임경당(臨景堂)이라는 전각이 있는데 임경당의 의미는 거울처럼 맑은 물에

가까이 있는 집이란 의미겠지요?

임경당에 딸린 위의 사진에 보이는 작은 정자는 육감정(六鑑亭)이라는 현판이 보입니다.

육감이란 몸(身)으로 보고(眼) 듣고(耳) 향을 느끼고(鼻), 맛보고(舌),

의미(意)를 느낀다는 뜻이 아닌가요?

 

 

또 삼청선각(三淸僊閣)이라는 글도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이곳이 송광사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1930년대에는 육감정 아래의 연못인 인소에서 뱃놀이를 했었다고 전해온다네요.

 

 

송광사는 우리나라 사찰 중 가장 많은 8천 여점의 불교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사찰이라고 하는대 보물 제1243호로 지정된 대웅전은 1857년(철종 8)에 제봉(齊峰)이 건립한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다포 팔작지붕이며 조선 후기 건축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이고 있다네요.

 

 

위의 사진에 보이는 커다란 나무통은 비사리 구시라는 것입니다.

커다랗고 긴 나무 밥통으로 대중들의 공양밥을 담아 두었던 큰 나무 그릇으로

4 천명분의 밥이 들어간다고 하네요.

지방마다 부르는 이름이 조금씩 다른 구시라는 것은 표준어로는 구유라고 하지요.

 

 

구유라고 하면 보통 가축의 먹이를 담는 여물통을 말하지만,

사람이 먹는 밥을 담아두는 것도 같은 말이겠지요.

사찰의 규모가 큰 곳은 행사가 있을 때 많은 사람이 찾아오기에 한꺼번에 많은 밥을

담아 둘 이렇게 큰 그릇이 필요할 텐데 이 정도 크기라면 쌀 7 가마니 정도의

밥을 한꺼번에 담아둘 수 있겠네요.

 

송광사가 있는 곳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