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족석각은 세계문화유산입니다.

2014. 1. 18. 08:00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이곳이 아름다운 이유는 불교에 관한 석각 예술만 볼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이렇게

일상생활의 모습뿐만 아니라 부모에 대한 효와 지옥 세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

민초에게 쉽게 다가서려 했다는 점입니다.

 

위의 사진은 피리 부는 여인이라고 이름 지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가던 길 멈추고 눈을 감고 귀 기울이면 마치 곁에서 연주하는 피리 소리가

들릴 것 같지 않습니까?

佳人은 이 앞에 서서 한동안 걸음을 옮길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천 년의 소리를 들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소리를 분명히 들었습니다.

무슨 소리요?

"뭐하세요? 빨리 가지 않고요."

울 마눌님의 재촉하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습니다.

 

 

이곳은 199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입니다.

바로 1년 전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이 산싸(三峽)댐 건설의 진척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충칭에 들렀다가 "대족석굴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교육기지로서의 가치가 크다. 하루빨리

주변환경을 정비하고 문물 보호에 힘써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도록 힘쓸 것"을 지시한 후

문화대혁명 이후 버려진 이곳의 주변 환경을 조성과 이곳에 살던 주민을 이전하는 일에 힘쓴 결과

 베이(北)산, 바오띵(寶頂)산, 난(南)산, 스먼(石門)산, 스하오(石篆)산 등 이른바

오산(五山) 석굴지역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게 된 것이라 합니다.

 

 

이제 석각이 있는 곳으로 들어갑니다.

인구가 100만 명이 겨우 넘는 이 작은(?) 도시가 석각의 고향(石刻之鄕)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대족은 758년 당 건원(乾元) 원년에 건립되었는데, 아주 풍족하다(大豊大足)는

이름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이 동네 사람들 발이 유난히 커서 대발이네가 살아서 대족이라고 하는지 알았어요~

이제부터 석각의 바다로 들어가 내용은 잘 모르지만,

사진으로 그 모습을 자세히 보여 드리겠습니다.

 

 

남송 시기에 밀종(密宗) 대사인 조지봉(趙智鳳) 주지가 밀종의 대도량으로 여기에

불사를 조성하면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운강석굴이 모두 돌로 만들지 않았고 맥적산 석각도 마찬가지잖아요.

여기는 100% 돌을 쪼아 만든 석각인 곳이죠.

원료가 다릅니다.

그래서 만들기는 더 어려웠지만, 원형은 그대로 오래도록 보존됐나 봅니다.

 

얼마나 다행입니까?

붉은 기운이 중국을 휩쓸 때 중국의 많은 문화재가 도륙당했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곳 대족은 광풍을 피할 수 있어 그대로 보존되었네요.

 

 

여기는 석각만 있는 게 아니라는군요.

향분보정(香焚寶鼎)처럼 이렇게 아름다운 글도 무척 많습니다.

그런 글자를 하나씩 음미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 아닐까요?

그러나 글자를 읽지 못하니 佳人은 그냥 모양만 보고 말씀드립니다.

 

 

왼쪽은 산신상으로 보입니다.

오른쪽이 도교의 창시자라는 노군상이 아닌가 생각되네요.

벌써 타고 다니는 짐승이 다르잖아요.

이곳의 석굴 표현방식은 마애불상의 석굴 양식이라 합니다.

어느 하나의 종교에 편중됨이 없이 삼교합일의 정신으로 만든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오른쪽은 유교의 시작이라는 공자상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렇게 이곳에는 불교의 석상 외에도 도교나 유교 그리고 산신까지

가리지 않고 만들어 놓았습니다.

하나의 힘보다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라는 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중국여행을 하다 보니 종교간의 구분이 우리와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런 글자처럼 아는 글자가 보이면 佳人은 무척 즐겁습니다.

청나라 동치 계유년 여름인 4월 8일에 썼다는 기록이 오른쪽에 남아있습니다.

덕가경이라는 사람이 썼다는 말인가요?

무척 힘도 있고 반듯하고 아름답게 쓴 글처럼 보입니다.

 

 

참 좋은 말입니다.

아마도 우리 인류가 가장 좋아하고 많이 사용하는 단어가 아닐까요?

글씨가 무척 힘이 있어 보입니다.

오늘 佳人의 사진을 보고 계신 분에게 이 두 글자를 선물하렵니다.

 

 

관세음보살인가요?

아니면 부처님이신가요.

지나가는 울 마눌님을 인자한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석벽에 이렇게 안으로 파고 들어가 위에는 지붕을 만들어 놓아

비바람으로부터 석각이 보호되도록 했습니다.

 

 

과감하게 명함판 사진처럼 상반신만 조각한 것도 있습니다.

여권 사진용인가요?

우리나라에서는 머리에 두건을 두르면 지장보살이라고 한다는군요.

관세음보살은 머리에 관을 쓰고요.

맞는 말인가 모르겠습니다.

위의 사진 속의 모습을 쳐다보니 쓸대없는 소리에 기가 차다는 듯 눈을 감고

헛소리하지 말고 빨리 통과하라고 하네요.

 

 

그러나 위의 사진에 보이는 보살은 두건도 두르고 관도 썼습니다.

이게 명확히 누구인가 우리처럼 어리숙한 민초를 테스트하려고 만든 것 맞죠?

그리고 머리 위로 더듬이처럼 보이는 것은 영기(靈氣)라는 것인가요?

꼭 감은 눈과 꽉 다문 입술은 뭔가 득도를 하고 난 후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려고

준비하시는 그런 모습이 아닌가요?

입술을 너무 매력적으로 표현한 것은 아닌가요?

 

 

사자로 보이는 것은 신수(神獸)일까요?

우리나라에서 보았던 해태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곳 보정산 석각은 때주에 여러 석각 중 가장 늦은 시기에 만든 것이라 합니다.

그래서인가요?

섬세한 모습은 우리에게 감동을 줍니다.

신수상 왼쪽으로는 동굴이 보이고....

 

 

이 신수상이 있는 왼쪽에 동굴이 있고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아마도 이 동굴 입구를 지키라 신수를 만든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안으로 들어가니 조명시설이 전혀 없어 무척 어둡습니다.

동굴 이름은 원각동(圓覺洞)이라는 동굴입니다.

 

 

원래부터 생긴 자연적인 동굴을 이용해 석상을 조각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둡지만, 석상이 채색되어 플래시를 터뜨리기 미안해 그냥 찍어보았습니다.

당나라 때 만든 불경인 "대방광원각수라료의경"의 내용을 형상화했다는군요.

내용은 성불한 석가모니가 문수, 보현 등 12명의 제자를 받아들여 가르치고

불문을 여는 그런 의미라 합니다.

 

 

동굴 입구로 들어오는 자연채광만 있고 조명장치를 하지 않았습니다.

불상의 채색이 변질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른 아침이라 구경하는 사람은 우리 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안에는 정면으로 삼존의 부처상이 있습니다.

좌우 벽을 따라 열두 제자의 모습을 조각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어두워 자세한 모습을 제대로 보기가 어렵습니다.

사진도 대부분 흔들려 사용하지 못하고 버려야 하겠네요.

 

 

흔들리지 않는 사진을 찍으려고 벽에 기대고 숨을 참는다고 하면서 찍어도

워낙 어둡기에 제대로 사진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플래시를 터뜨리기도 그렇잖아요?

삼존의 부처상과 좌우로 열두제자가 있고 그 앞에 득도하기 위해 무릎을 꿇고

수도에 정진하는 그런 모습으로 보입니다.

 

조지봉 스님의 자화상인가요?

성불하기 전의 부처의 모습으로 불문에 들어서려는 불자의 모습이 아닐까요?

아니면 바로 사바세상을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인가요.

돈에 물들어 찌들고 정치인보다 더 정치적인 말만 하고 놀음과 술에 찌들어 사는

추한 구도자는 분명 아닐겁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높이는 약 6m 정도이고 가로 세로가 각각 9m와 12m의 동굴입니다.

내부에는 모두 52존의 석상이 있습니다.

이 모습은 부처를 중심으로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의 모습을 나타낸 것으로 보이며

이런 동굴을 이용한 입구로부터 자연채광을 이용해 이렇게 둥글게 조각하는 기법은

오래된 전통적인 기법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아는 게 없으니 이렇게 혼자만의 생각으로 여행합니다.